은행원의 이야기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이번달월급 2023. 9. 2. 09:03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은행에 다니며 굉장히 많이 들었던 말이며, 또한 제가 은행에 다니기 전 은행에 갔을 때 제일 많이 했던 생각입니다.

 

이 말은 거래를 하며 들을 때도 있지만, 새로운 고객님을 받을 때도 듣습니다.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내 순서는 오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별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게다가 바로 그 다음이 나인데, 은행원이 갑자기 식사, 출장, 반차 등의 사유로 사라질 때는... 정말 고객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섭섭해하셔도 다 이해해 주십니다.)

 

당연히 다 아시겠지만, 은행원은 놀고 있지 않습니다.

 

고객의 명의를 이용하여 다른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에 있었던 몇몇 은행들 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저는 단순 무통장입금을 하러온 고객에게 작은 글자가 가득한 이상한 서류를 내밉니다.

 

왜 그런 서류를 받아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드리지만, 그럼에도 고객의 미묘한 눈빛은 제 가슴을 따끔하게 합니다.

 

정말 필요해서 그런건데...

 

 

저는 대학시절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이 둘을 모두 배우며 깨달은 것 중 한 가지가 모든 문제의 근본을 무지로 돌리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사고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대해서도 이 블로그에서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건 정말 단순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고객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고객님도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실테니까요.

 

물론 그런 차이를 정중히 알려드리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창구에서 그런 느긋한 대화는 당장 앞에 있는 고객님의 기분은 풀어드릴 수 있어도, 바로 다음 순번 고객님의 기분은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냥 웃음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은행에서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오해는 깊어가고 서로가 서로를 원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 환경에 대한 저의 작은 저항이 바로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도 저는 같은 일상을 보내며, 같은 문제를 마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제가 어느 은행에 재직중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여러 정보를 채워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